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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라진 전염병, 천연두의 비밀(4)-천연두 피해사례(1)

졔토피아 2023. 12. 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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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 피해사례(1)

 

천연두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질병 중 하나로 추산되며, 약 10억 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질병들과 달리 천연두는 단기간에 마구 죽이고 잦아들지 않았으며, 천 년 이상에 걸쳐 유행하고 잠잠해지고 다시 유행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인류를 괴롭혔습니다.

한국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천연두가 이미 존재했으며, 옛말로는 '마마'라고 불렸습니다. 신라의 처용가에 등장하는 '역신'이 천연두와 관련이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천연두의 위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천연두를 '손님' 등의 존칭으로 부르고, '배송굿'을 벌여 천연두 귀신을 얼른 떠나게 하기를 바랐던 정도입니다. 조선 시대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도 어렸을 때 천연두에 걸려 곰보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효의왕후와 정조 모두 천연두를 약하게 앓았고, 정조의 자식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1790년대에는 천연두가 유행하여 4,234명이 사망했으며, 한국전쟁 중인 1951년에는 4만 명이 감염되어 11,530명이 사망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습니다. 이는 한국전쟁 중 천연두가 유행하는 지역의 유엔군과 노출된 인구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1954년부터 천연두 환자 수는 많이 감소하였고, 1960년에는 3명의 천연두 환자가 발생한 이후로 한국에서는 천연두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2022년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1910년부터 1960년 말까지 국내에서는 총 152,314명의 천연두 환자가 발생하였으며, 1961년 이후에는 환자 사례가 없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만주족이 천연두에 내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숭덕제가 병자호란에서 승리한 후에도 조선을 합병하거나 굴레 정권을 세우지 않고 사람들만 잡아간 것도, 천연두가 군대에 퍼질 것을 두려워해서였으며, 황제인 순치제와 여러 사촌 형들도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중국에 체류하던 예수회 선교사인 아담 샬 신부에게 천연두 내성 여부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고, 천연두에 걸렸다가 생존한 현엽이 후계자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현엽이 후에 강희제로 황제가 되었으며, 천연두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천연두 예방을 위한 전문 기관을 설치하고 여러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때 개발된 인두법은 인간에게 약하게 감염시켜 면역력을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인두법 시술을 받은 사람들의 생존율은 90%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의학 수준이 낮아 절차가 까다롭고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두법과 천연두 검사법은 러시아와 터키를 거쳐 영국까지 전해져 약 120년 후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법을 발명하기까지 예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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